2017-02-28 이틀간의 이야기

삼월부터 출근하기로 했는데 벌써 몇번이나 회사에 나와버렸다. 뻘쭘한 시간을 보내고, 뻥튀기된 이력서로 긴장하며 면접을 보는 도중 회사에 대한 의문이 조금씩 생겨갔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만, 앞으로가 약간 걱정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제와 오늘 이야기.

어제(27)는 집에서 쉬었다. 일본에 처음 오다 보니 이곳저곳 둘러보느라 주말을 사용했는데, 룸메M이 오후에 회사를 가서 면접을 봐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어서 일단은 멀리 나가지 않고 대기를 했다.

그러던 중 배가 고파서 상점가에 있는 작은 마트에 가서 장을 바왔는데, 그 사이에 카톡으로 연락이 와서 바로 회사에 가지 못하고 집에 와서야 그 사실을 알고 부리나케 룸메는 회사로 향했다.(그러니까 데이터 유심을 사라니깐…)

룸메M이 돈이 없다고 혼잣말처럼 이야기해서 마트 결제는 내가 했다. 이삼일 뒤면 멀리 가게 될 수 도 있어서, 이왕이면 보존식을 저장해 두고 룸메가 편히 먹어라는 생각이었다. 샴푸와 린스, 바디샤워, 페브리즈도 사서 나눠 쓰기로(사실은 선물…)했다.

아마 가져온 돈은 비슷할 터지만 자취생활에 드는 유지비를 생각하면 앞으로 아껴 써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월세, 매일의 밥값과 교통비, 생활에 필요한 도구를 사는 것, 세탁비 등 생각치 않은 곳에서 지출이 일어나게 되니… 아마 자신이 생각한 것 보다 많은 지출에 당황했을 것 같다.

나도 돈은 없지만.

자취생활을 함께하기 일주일 정도 밖에 되지 않았지만 벌써 룸메M에 대한 단점들, 아쉬운 점들이 눈에 보인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점을 상의 없이 처리해버리는 점이나, 친동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만 챙기는 점 등이 조금 눈에 걸리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같이 있을 것은 아니기 때문에 별 말 없이 참고 있지만, 상당히 사회 생활의 경험이 많이 필요할 듯 하다.

좋은 점은 단단하다는 것이다. 멘탈적인 면보다 육체적인 면에서. 작은 풍파에는 잘 견딜 것 같은 풍채를 가졌다. 학원이나 회사에서도 남의 일에 큰 신경을 쓰지 않는 것으로 보이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묵묵하게 한다. 외곬수 적인 면모는 나도 고쳐야 할 점 중의 하나.

물론 나에게 맞춰 주기 위해 본인도 고생하는 면이 있겠지만…

어쨌든, 룸메M과 오랫만에 떨어져서 집에서 홀로 있으니 뭔가 다른 사람들은 일하러 갔는데, 나만 쉬고 있다는 몹쓸(?)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랫만에 웹에서 자료를 찾아 스트럿츠2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역시 일본에서 사용하는 프레임워크는 오래된 것이라 자료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다행히 옛날 발표 자료가 있어 그것을 보며 회사에서 인쇄한 이력서 뒷면… 이면지에 정리해 나갔다.

한 세시간에서 네 시간 정도 지나서 단톡방(단체 카카오톡 채팅방)에서 이것저것 정보가 흘러나왔다. 다른 사람들도 면접 결과가 어느 정도 가시권(?)에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저녁을 먹고 들어온 룸메M과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눴다. 아마 긍정적인 결과가 있었고, 금융권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쪽으로 가는 것 같았다. 유닉스를 사용한다는 이야기를 해서 나의 짧은 지식으로 이것저것 가르쳐줬다. 기반을 만들기 위해 VirtualBox에 우분투 리눅스(32비트)를 설치했고, 애저 클라우드에 배포되어 있는 리눅스 vm에 접속하는 등 기본적인 부분을 말해줬다.

오늘(28)은 또다시 회사에 출근. 그래도 오늘은 명분이 있었던 것이, 귀사일이라고 해서 회사에 방문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선배들, 상사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고, 점심을 먹고 난 이후에는 동기 K형을 만나 즐겁게 담소를 했다. 아참, 오전에는 멀리에 있는 현장으로 가는 것이 공식화 되었다.

멀리 가면 어느 정도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한 편, 프로그래밍에 대한 조언을 받기 힘든 팀으로 프로젝트에 참가해야 한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같은 팀이 될 다른 네 명의 사람들과 이런저런 쓸데 없는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오후가 되자 본격적으로 선배, 상사들이 방문했다. 근퇴 정보나 영수증 처리를 하기 위해 오는 느낌이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내 이름을 부르는 상사도 있었고, 자기소개를 시켜서 나에 대해 말하는 도중 뱃살 이야기나 취향에 대한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우기도 했다. 재미있는 상사들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동기 K형의 상사는 조금 힘들어 보였다. 지난 번에 만나 이야기할 때 등장한 그 사람인 것 같은데, 상상한 것 보다 나이가 적어 보이는데도 왠지 모르게 빡빡한 느낌이 있었다.

첫번째 프로젝트는 결정되었지만 두 번째, 세 번째 프로젝트에 넘어갈 때에 오늘 만난 상사들 중 한 분과 함께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지난 금요일에 봤던 면접에서 오전은 합격, 저녁 건도 일부 합격을 했다는 소식에 좀 놀라긴 했다.)

보안 교육..(갑자기 쳐들어온 상사에 의해… 앞에서 말한 비호감인 그…)을 하고 우리 프로젝트 팀에 대하여 어느 정도 간략한 브리핑을 했다.

그리고 옆에서 유닉스(리눅스)에 대해 질문하는 룸메M에게 답을 하며 인터넷 서핑을 하고 있으니 마칠 시간이 다가왔다. 

다만 마치기 직전 룸메M은 금융권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소식을 들어 깜짝 놀랐다. 어쩌면 우리들 중 처음으로 빠꾸를 맞은 것인데, 거절당한 그의 모습은 그저 처량했다.(그 와중에 같은 프로젝트의 다른 동기는 참가하는 것으로…)

집에 가는 길에 원래 들릴 예정이었던 모스버거에서 햄버거를 사주며 위로를 했다. 예전에 은행 데이터센터를 들어갔던 이야기를 하며 처음부터 금융권 일을 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위로를 덧붙였다.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흘러갈 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시간은 벌써 7일이 넘어 간다. 오늘도 슬슬 날이 밝아온다.

2017-02-26 4일간의 이야기

일본에 온 지도 순식간에 4일이 지났다. 지금 처음과 다른 점이라고 하면 스이카(SUICA)라고 하는 교통 카드를 사서 매우 편리해졌다는 점, 점점 돈이 부족해져 간다는 점, 면접을 2번이나 치루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는 점이다. 룸메이트인 M과도 조금씩 적응(또는 반발)을 하기 시작했다.

[2017-02-22(수) 숙소_짐풀기]

이전 글에서 이야기했던 대로 짐을 풀고, 다음 날을 준비했다. 처음으로 제대로 된 정장을 입고 출근하는 경험도 더불어. 처음이라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려웠다. 한자를 잘 읽지 못해서 공공 시설을 이용할 때 문제가 많았다.

[2017-02-23(목) 첫 출근… 그러나]

처음으로 일본의 회사로 출근. 하지만 동기의 이야기에 조금 철렁한 상태였다. 파티션도 없는 사무실에는 긴장한 모습이 역력한 우리만 있었다. 이미 약 1달 전에 와 있던 동기와 2년 전쯤 와있던 선배와 어색한 시간을 보냈다. 뻥튀기된 이력서와 급조된 면접 준비로 몸도 마음도 지쳤던 하루. 하지만 웃음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나는 왜 이 곳에 왔나? 하는 의문이 드는 하루였다. 내가 그동안 다닌 회사들이 얼마나 좋은 곳이었는지 새삼 깨달은 날이었다.

[2017-02-24(금) 드디어 동기가 다 모였다]

오전엔 마음에 큰 위안을 얻었고, 오후에는 큰 절망감을 느낀 하루. 아침에는 M과 회사 근처에서 맥모닝을 먹었다. 태어나 처음(?) 맥모닝을 먹는다는 동생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첫날과 둘째 날, 동생 덕분에 빠르게 회사 근처에 도착해 하루를 준비할 수 있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을 기다리느라 어제, 오늘 모두 패밀리마트에서 양복 차림으로 집합하긴 했지만…

원래 관광을 위해 1주일 빨리 왔지만 급하게 오늘 날짜(금요일)로 면접이 잡혀서 어제, 오늘 회사에 출근한 것이었기 때문에 시간은 굉장히 바쁘게 흘러갔다. 오전에 잡힌 면접(조금 먼 지방, 교육기관으로 추정됨)과 오후에 잡힌 면접으로 나뉘어 있었다. 어제 처음 출근한 팀과 오늘 처음으로 회사에 온 팀이 합쳐져 있었지만, 실제 면접에 참여하는 인원 외에는 뻘쭘하게 파티션도 없는 조용한 회사에서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오전에 본 면접은 어느 정도 가망이 있었다. 급조된 이력서, 발표 방식이었지만 화상 회의로 이뤄진 면접이라 그런지 그나마 긴장을 덜 하고 진행할 수 있었다. 도중에 조금 실수한 점이 있었지만, 웃음으로 떼울 수 있을 만큼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것보다는 내가 모르는 이력이 추가되어 그 부분을 설명하는 점이 스스로도 어처구니가 없기도 하고 웃겼다. 그래서 어느 정도는 포기한 부분도 있었다.

오후에 본 면접은 그야말로 대실패였다. 늦은 시간, 집중력이 제로인 상태에서 신입사원 면접처럼 좁은 사무실에 여섯명이 줄줄이 앉아 어설픈 일본어로 눈에 핏발 선 일본 사람과 면접하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다. 하루 종일 혼이 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직장 생활이 앞으로도 이렇다면 다시금 생각해봐야 겠다… 혹은 이게 제대로 된 일처리인지 의문이 드는 하루였다. 집에 돌아올 때 저녁에 같이 면접을 본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동료와 함께 볼일을 처리하고 집에 오니 자정이 넘어 있었다. 가장 힘들고 지친 하루였다.

[2017-02-25(토) 첫 휴일 ]

어제 두 군데 면접을 보고, 처음으로 주말을 맞았다. 룸메 M이 오전에 회사에 출근(면접…)했기 때문에 조금 기다리다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일본의 용산, 아키하바라에 놀러가기로 했다. 점심은 홀로 로손(lawson)이라는 편의점에 들러 라면과 삼각김밥을 사 먹었다.

오후 3시쯤 아키하바라에 도착. 정찰제(?)로 가격이 딱 표시되어 있는 깔끔한 전자 상가의 모습이었다. 겉은 요란하지만 속은 알찬 느낌을 받았다. 중고 물품도 많아 만족스러웠고, 파나소닉의 1500엔 짜리 헤어드라이기를 하나 샀다. 룸메 M은 태블릿을 고르는 데 시간을 많이 썼다. 기다리느라 힘들었다. 밖으로 나와서 게임, 피규어 등 이것저것 취미 용품을 파는 상점을 둘러봤다. 많이 걷고 이야기해서 좀 지쳤지만 그리 나쁘지 않았다. 생각보다 몸이 잘 움직여졌다. 일본에 와서 적게 먹어서일지는 몰라도. 저녁에는 집 근처 역내에서 가츠동을 시켜 먹었다. 조금 짜긴 해도 우걱우걱 입 속에 들어갔다.

[2017-02-26 시부야에서 동기모임]

오늘은 동기였던 TH형을 만나러 가는 날이었다. 어제 많이 피곤한 모습을 보였던 룸메 M이 일어나서 함께 시부야로 출발했다. 정오 30분 정도에 도착해서 동기 4명이서 밥을 먹고, 게임센터에 가서 놀았다.

신주쿠인지 시부야인지… 아직도 헷갈린다. 시부야의 하치코 동상 앞에서 만나 어제와 다름 없이 여러 건물을 보며 점심을 먹을 곳을 찾았고, 그냥 헤어지기 아쉬워 게임센터에 들어갔다가 나왔다. 점심은 가스토라고 하는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서 일본 애니메이션에 나오던 제대로 된 함바그를 드디어 먹어 봤다! 게임센터에는 룸메가 좋아하는 함대컬렉션이라는 게임이 있었고, 그것을 플레이하는 모습을 재미있게 관찰했다. 나는 철권7을 플레이했는데, 생각 외로 쉽게 이기게 되어서 놀랐다. 물론, CPU대전이 아니라 온라인 상의 사람과 대전했을 때에는 3:0으로 무참하게 패배했다..

작년 10월쯤 일본에 가서 일하고 있는 동기 형에게 이런 저런 것을 물었다. 회사 생활은 좋은지, 집은 어떤지, 급여는 어떤지.. 역시 생각한 대로 리더를 누구를 만나는가? 그리고 일을 하는 장소와 고객의 성향이 어떤가에 따라 같은 회사의 사원이라도 크게 차이가 나는 것 같다. 처음에는 굉장히 좋은 분이라고 생각했던 동기 형의 리더가 사실은 상당히 아랫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고 느꼈다고 한다. 타지의 회사 생활에서 이보다 나쁜 경우가 있을까? 차라리 일이 힘들다면 노력을 하면 되지만, 마음이 맞지 않은, 혹은 괴롭히는 상사라면 얼마나 힘든지는 본인이 아니면 잘 모를 것이다. 나는 그런 환경을 만나지 않길 간절히 빌었다.

2017-02-23 일본에 왔습니다… 드디어!

와… 정말 여기를 와버렸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일본에.

–어제 이야기–

어제 학원 사람들을 마지막으로 만나고 왔다. 세시쯤 맞춰서 갔는데… 두 손에는 1층의 GS편의점에서 산 음료수를 가득히 들고 있었다.

조금 어색한 상태로 2층에 올라가 학원의 선생님(일본어 선생님)부터 학생까지 한 분 한 분 나누어 드렸다.

다시금 선생님, 부장님, 사장님께 인사를 드리고, 동기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왔다.

흡연구역에서 부장님과 담소를 나누고,

–오피스텔에서의 마지막 날–

며칠 전부터 뼈빠지게(?) 준비해서 방을 아래와 같이 비웠다. 거의 쉬지 못하고 일한 것 같다. 짐은 모두 KS에게 맡기고, 베개도 제대로 없는 상태에서(공기를 채워 넣는 목베개로 버팀) 잠을 자고, 남아 있던 식재료를 처리하는 일과였다.

2014년부터 나의 생활 터전이었던 오피스텔… 이제 안녕. 남은 보증금 100만원도 제대로 돌려받았다.

집 주인과의 이야기꽃으로 제대로 마무리하고 떠날 수 있었다. 마지막 날의 오전에 서서 했던 이야기들은 잊지 못할 것 같다.

마지막 모습들. 안녕…

 

–오늘 이야기–

떨리는 마음으로 비행기를 탔다. 공항에 일찍 도착해서 M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L, C 과 합류해 출국 심사까지 마치니 꽤 많은 시간이 지났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어 비행기 출발이 많이 지연됐다. 휘청거리면서도 저가 비행기는 잘 날았다. 마치 놀이공원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는 느낌이었다. 상공에서 일본의 출입국카드를 작성하는 것은 다급하면서도 신선한 경험이었다.

일본에 도착했다. 나리타공항에 도착해서의 그 감동이란…

2개월에 3.2GB를 제공하는 데이터 USIM 을 구입했다. 숙소에 찾아갔다. 아주 낡고 허름했지만 우리의 출발은 휘황찬란하다고 느꼈다.

해외취업 성공수기

해외취업 성공수기
작성자: 나(XXX대학교 졸업, 컴퓨터 공학과)
작성일: 2017년 2월 21일

2016년 4월, 일본 취업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내 전공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분야에서 제대로 배워서 취업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러던 중 월드잡플러스를 통해 산업인력공단의 K-Move 프로그램에 접수하게 되었다. 취업처는 일본. 서류 전형에서 합격했을 때, 일본으로의 취업 의지가 중요하다는 이메일을 받고 본격적으로 힘을 내 보려고 생각했다. 평소 일본문화에 관심이 컸던 터라 서류 전형 결과가 기다려졌다.

4월 26일, 면접을 보러 이동했다. 36주 과정. 수업은 하루 8시간. 서울에서 하는 자취에, 회사까지 그만두고 학업에만 전념하려고 하니 초반에 생활 비용 문제로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 도전하지 않았다면 내일로 예약되어 있는 도쿄 행 비행기표는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다음 날인 4월 27일, 면접을 합격하여 오리엔테이션(OT)에 오라는 메일을 받게 되었다. 상쾌한 출발이었다. 그리고 컴퓨터 공학과의 필수 자격증(?)인 정보처리기사의 필기 시험을 열심히 준비해, OT에 참여하기 전 자신감을 높일 수 있었다.

5월 13일.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교육센터를 선택했기 때문에, 한시간쯤 걸어서 교육장에 OT를 받으러 갔다. 1시 정도까지 모였는데, 나를 포함해 19명 정도가 보였다. 우리 뒤에도 5명이 기다리고 있다는 설명을 들었는데, 정말 제대로 할 사람만 참가해달라는 이야기였다. 이제 과정을 듣기 위한 필요 서류, 자격증, 비자자격 등을 들었다. 외국에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다 보니 복잡했지만, 이해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처음으로 강의실에 앉게 되어 감회가 새로웠다. 다음 해 1월 20일까지 이어지는 학습 일정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실무프로젝트’라는 과목이 가장 중요하고, 취업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실무를 위한 교육을 한다는 메시지를 전해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교육의 핵심은 일본어와 JAVA 프로그래밍인 듯 했다. 숨을 죽이고 서로 간 어색하게 앉아 강좌에 대한 설명을 듣는 우리(기수)와는 달리, 바로 옆 강의실에서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취업 시 처음에 100만원, 6개월 후 100만원이 나온다는 지원금 이야기까지. OT를 산뜻하게 마쳤다. 집으로 돌아가 일본어 능력시험인 JLPT 5급을 신청했다.

5월 15일, 첫 강의일을 대비해 준비물을 챙기고, 이른 저녁에 몸을 뉘었다. 마치 고3때로 돌아간 듯 했다. 좋은 기회를 살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5월 16일, 학습 1일차. 학원을 다니면서 제대로 배우지 않은 것은 다시 숙제로 돌아온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학창 시절, 제2외국어로 선택했던 일본어 – 특히 가타카나 외우기는 또다시 숙제로 돌아왔다. 일본어 교육은 기초반으로 들어갔다. 귀가 조금 트인 정도로는, 문자로 소통하는 벽을 넘지 못한다는 실감을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PC등에서 일본어를 입력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평소 관심 없던 한자도 눈 여겨 살펴봐야 했다. 동기들과 빨리 친해지려고 애를 썼다. IT 시간에는 JAVA 환경에 대한 이야기부터 일본의 현실과 도전할 수 있는 포인트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교육 과정이 결코 쉽지 않다며, 환상을 갖지 않도록 취업처의 현실을 이야기해주는 교육이 마음에 들었다.

공부다운 공부를 다시 시작한 작년 5월. 내 노트는 일본어와 IT 지식에 대한 내용으로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퇴사 후 첫 수업까지, 마치 사회와 담을 쌓은 듯 좁은 방 안에 틀어박혔던 지난 날에서 벗어나 수강생들과 커뮤니케이션하며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에, 즐거워서 어쩔 줄 몰랐다. 공부에만 전념하면 된다고 자신을 다독일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흘러간 교육 과정. 교재를 받고 간간이 쓴소리도 들으며 화이팅할 수 있는 자극을 받았다.

그렇게 6월(두 달 째), 7월(세 달 째)이 되었다. 학원을 수강하기 전 개인적으로 접수해 두었던 JLPT 5급에 응시했다. 학원의 일본어 교육의 성과였는지는 몰라도 아주 쉽게 합격했다. 제대로 된 일본어 수업은 이곳이 처음이었다.

9월에는 JLPT 2급에도 도전하려고 마음먹었다. 일본어로 읽고 쓰는 일, 질문이나 대화에 한 마디 하는 일이 어쩌면 프로그램 개발 공부(IT 수업)보다 중요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10월에는 정보처리기사 실기를 응시하여 합격했다. 수험서도 읽었지만, IT 시간 외에 별도로 학원에서 제공하는 정보처리기사 실기 수업이 도움이 된 것 같다. 그리고 동기 중에서 능력이 출중해 먼저 일본으로 떠나는 사람도 생겼다. 나도 혹시나 빨리 일본에 가게 되면? 그럴 준비가 되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일본어를 접한 부분이 일본에 가서 불편함 없이 생활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는지도 의문이었다. 좀 더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일본어 공부는 한자와의 싸움이었다. 그러던 중 일본에서 시간을 내어 방문한 회장님으로부터 일본 생활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전직, 퇴직, OJT, 실무생활, 일본어 능력은 어떤 상황에서 요구되는지 등에 대해서 였다. 일본에서의 숙소(집) 문제와 같은 현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들었다.

11월에는 월반하여 새로운 교실에서 수업을 들었다. 현실적인 문제(자취 생활을 하는 데 빠듯한 잔고 상황)가 닥쳤기 때문에 한시라도 빨리 취업을 하고 싶었다. 돈 문제는 처음부터 있었다. 학원 비용 자체는 정부에서 지원을 해 주는 사업이기 때문에 추후 100만원만 납입하면 되었지만, 생활에 필요한 자금은 여전히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자취를 하면서 학업에만 전념하려면 적어도 얼마 이상의 계좌 잔고가 필요했다. 아껴 썼지만, 그것이 확연히 줄어들어 있었다. 마음은 더 간절해졌다. 1달의 차이. 이전 기수와의 시간은 30일이었다. IT 수업은 잘 따라왔으니 일본어만 따라잡으면 승부가 된다는 생각에 월반에 도전했다. JLPT 시험은 다음 달로 다가왔다. 통학 시에 내내 일본어 회화 MP3를 들었다.

12월. 열심히 새 반에 적응하고 가장 중요하다던 일본 ‘실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실제로 현장에서 사용하는 설계서를 읽고 쓰며 개발에 발표자료까지 하루하루가 쉴 새 없이 지나갔다. 4주차,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마지막까지, 많은 심경의 변화가 있었다. 스스로 약속을 하고 그것을 가능한 한 지키려고 노력했다. 팀장이 되는 순간부터 프로젝트를 마무리할 때 까지, 팀원이나 프로젝트를 의뢰한 사람의 의식 흐름이 변화하는 것을 느꼈다. 다른 팀보다 나은 결과물, 진행 방식을 하기 위해 이것저것 시도했다. 작업을 할당하는 것도, 발생한 이슈에 대응할 적당한 사람을 찾는 것도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팀원, 팀장 역할을 번갈아 해보며 ‘실무도 이런 걸까?’ 생각을 하며 프로젝트를 해 나갔다.

교육 과정은 마지막으로 가고 있었다. 비자 발급을 위한 각종 서류를 준비하고, 일본어 면접을 준비했다. 취업 일자는 1월 혹은 2월로 알려졌다. 불안과 도전에 대한 흥분이 반반이었다. 자취방을 빼기 위해 오랫동안 함께한 물건을 처분하기 시작했다. 일본어 전자사전도 중고로 구매하는 등, 슬슬 취업을 위한 준비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2월. 이제 내일이면 나도 일본 행 비행기를 탄다. 비행기 표 구입, 최초에 머물 거처 구하기 등을 마쳤다. 내 등 뒤에는 캐리어 한 개와 가방 두 개에 생활에 필요한 짐이 한가득 쌓여 있다. 다음 달이면 업무를 시작하게 되는데, 지금은 불안보다 설레는 마음이 훨씬 크다. 노트북 자판 두드리는 소리만 들리는 조용한 이 시간, 새로운 곳에 가서 더 높은 꿈을 꾸리라 생각해본다.

학업에만 전념할 환경을 만들어 준 학원 관계자 분들, 꼼꼼히 교육해주신 선생님들, 함께 열심히 공부한 수강생 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 또한 산업인력공단의 K-Move사업이 없었다면 도전 기회 자체가 없었을 것이다.

이 글을 읽을 여러분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힘내길 바란다. 미리 대비하고 좀 더 나은 결과를 반드시 얻기를. 여러분의 꿈을 절실하게 응원하며….

2017년 2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