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부터 출근하기로 했는데 벌써 몇번이나 회사에 나와버렸다. 뻘쭘한 시간을 보내고, 뻥튀기된 이력서로 긴장하며 면접을 보는 도중 회사에 대한 의문이 조금씩 생겨갔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만, 앞으로가 약간 걱정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제와 오늘 이야기.
어제(27)는 집에서 쉬었다. 일본에 처음 오다 보니 이곳저곳 둘러보느라 주말을 사용했는데, 룸메M이 오후에 회사를 가서 면접을 봐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어서 일단은 멀리 나가지 않고 대기를 했다.
그러던 중 배가 고파서 상점가에 있는 작은 마트에 가서 장을 바왔는데, 그 사이에 카톡으로 연락이 와서 바로 회사에 가지 못하고 집에 와서야 그 사실을 알고 부리나케 룸메는 회사로 향했다.(그러니까 데이터 유심을 사라니깐…)
룸메M이 돈이 없다고 혼잣말처럼 이야기해서 마트 결제는 내가 했다. 이삼일 뒤면 멀리 가게 될 수 도 있어서, 이왕이면 보존식을 저장해 두고 룸메가 편히 먹어라는 생각이었다. 샴푸와 린스, 바디샤워, 페브리즈도 사서 나눠 쓰기로(사실은 선물…)했다.
아마 가져온 돈은 비슷할 터지만 자취생활에 드는 유지비를 생각하면 앞으로 아껴 써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월세, 매일의 밥값과 교통비, 생활에 필요한 도구를 사는 것, 세탁비 등 생각치 않은 곳에서 지출이 일어나게 되니… 아마 자신이 생각한 것 보다 많은 지출에 당황했을 것 같다.
나도 돈은 없지만.
자취생활을 함께하기 일주일 정도 밖에 되지 않았지만 벌써 룸메M에 대한 단점들, 아쉬운 점들이 눈에 보인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점을 상의 없이 처리해버리는 점이나, 친동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만 챙기는 점 등이 조금 눈에 걸리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같이 있을 것은 아니기 때문에 별 말 없이 참고 있지만, 상당히 사회 생활의 경험이 많이 필요할 듯 하다.
좋은 점은 단단하다는 것이다. 멘탈적인 면보다 육체적인 면에서. 작은 풍파에는 잘 견딜 것 같은 풍채를 가졌다. 학원이나 회사에서도 남의 일에 큰 신경을 쓰지 않는 것으로 보이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묵묵하게 한다. 외곬수 적인 면모는 나도 고쳐야 할 점 중의 하나.
물론 나에게 맞춰 주기 위해 본인도 고생하는 면이 있겠지만…
어쨌든, 룸메M과 오랫만에 떨어져서 집에서 홀로 있으니 뭔가 다른 사람들은 일하러 갔는데, 나만 쉬고 있다는 몹쓸(?)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랫만에 웹에서 자료를 찾아 스트럿츠2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역시 일본에서 사용하는 프레임워크는 오래된 것이라 자료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다행히 옛날 발표 자료가 있어 그것을 보며 회사에서 인쇄한 이력서 뒷면… 이면지에 정리해 나갔다.
한 세시간에서 네 시간 정도 지나서 단톡방(단체 카카오톡 채팅방)에서 이것저것 정보가 흘러나왔다. 다른 사람들도 면접 결과가 어느 정도 가시권(?)에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저녁을 먹고 들어온 룸메M과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눴다. 아마 긍정적인 결과가 있었고, 금융권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쪽으로 가는 것 같았다. 유닉스를 사용한다는 이야기를 해서 나의 짧은 지식으로 이것저것 가르쳐줬다. 기반을 만들기 위해 VirtualBox에 우분투 리눅스(32비트)를 설치했고, 애저 클라우드에 배포되어 있는 리눅스 vm에 접속하는 등 기본적인 부분을 말해줬다.
오늘(28)은 또다시 회사에 출근. 그래도 오늘은 명분이 있었던 것이, 귀사일이라고 해서 회사에 방문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선배들, 상사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고, 점심을 먹고 난 이후에는 동기 K형을 만나 즐겁게 담소를 했다. 아참, 오전에는 멀리에 있는 현장으로 가는 것이 공식화 되었다.
멀리 가면 어느 정도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한 편, 프로그래밍에 대한 조언을 받기 힘든 팀으로 프로젝트에 참가해야 한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같은 팀이 될 다른 네 명의 사람들과 이런저런 쓸데 없는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오후가 되자 본격적으로 선배, 상사들이 방문했다. 근퇴 정보나 영수증 처리를 하기 위해 오는 느낌이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내 이름을 부르는 상사도 있었고, 자기소개를 시켜서 나에 대해 말하는 도중 뱃살 이야기나 취향에 대한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우기도 했다. 재미있는 상사들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동기 K형의 상사는 조금 힘들어 보였다. 지난 번에 만나 이야기할 때 등장한 그 사람인 것 같은데, 상상한 것 보다 나이가 적어 보이는데도 왠지 모르게 빡빡한 느낌이 있었다.
첫번째 프로젝트는 결정되었지만 두 번째, 세 번째 프로젝트에 넘어갈 때에 오늘 만난 상사들 중 한 분과 함께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지난 금요일에 봤던 면접에서 오전은 합격, 저녁 건도 일부 합격을 했다는 소식에 좀 놀라긴 했다.)
보안 교육..(갑자기 쳐들어온 상사에 의해… 앞에서 말한 비호감인 그…)을 하고 우리 프로젝트 팀에 대하여 어느 정도 간략한 브리핑을 했다.
그리고 옆에서 유닉스(리눅스)에 대해 질문하는 룸메M에게 답을 하며 인터넷 서핑을 하고 있으니 마칠 시간이 다가왔다.
다만 마치기 직전 룸메M은 금융권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소식을 들어 깜짝 놀랐다. 어쩌면 우리들 중 처음으로 빠꾸를 맞은 것인데, 거절당한 그의 모습은 그저 처량했다.(그 와중에 같은 프로젝트의 다른 동기는 참가하는 것으로…)
집에 가는 길에 원래 들릴 예정이었던 모스버거에서 햄버거를 사주며 위로를 했다. 예전에 은행 데이터센터를 들어갔던 이야기를 하며 처음부터 금융권 일을 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위로를 덧붙였다.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흘러갈 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시간은 벌써 7일이 넘어 간다. 오늘도 슬슬 날이 밝아온다.